세상을 30년 하고도 반을넘기며 살다보니 이런생각이 든다.
잠시 이야기를 역사로 돌리자면, 이방원이 사육신 정몽주에게 아래와 같이 마음을 떠보았다.
내가 20대 초때는 정몽주가 나에게 더 멋지게 보였지만 지금 즘 내 나이에서는 이방원의 말이 이해가 된다.
결국 지조가 있던 정몽주의 가족은 연좌제까지 몰려 모든 가족이 몰살 당했다.
국가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국가가 있은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무슨의미겠는가.
나 혼자 몸이라면 내 지조도 중요하지만,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지조와 자존심보다는 가족의 삶이 더중요하지 않겠는가?
살아가다보니 아부도 칭찬도 그리고 솔직한 직언도 결국에는 나스스로가 판단하는게 아니라 듣는 상대방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말해도 남이 들을때 아부나 칭찬으로 들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말은 말인것이다. 의미를 두기보다는 표현의 수단일 뿐이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지 이야기가 정리가 안되고 쭉 쓰여져 나가는데...
문득 출근하면서 이런생각을 했다.
약한자의 편에서서 그들을 대변하겠습니다. 흔하게 정치판에서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사회생활을 해보니 참 아이러니 한 말이다. 어떻게 약자편에서서 약자를 대변하겠는가?
결국에 세상을 움직이고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갑오브 갑이고 강자들뿐인데, 어떻게 약자들과 함께 약자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겠는가? 평등하고 약자도 좀더 잘살아 보자는 취지는 좋으나, 그리고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그런 마음을 숨기고 내가 강자의 굴속에 어떻게 든 들어가서 강자보다 강한 사람이되어 내가 넘어선 강자들을 하나씩 설득시키거나 이겨나가면서 약자들이 좀더 편하게 살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난 알았다. 절때로 약자의 무리에서 약자를 위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정치판에 그런 말이 조선시대 아니 더 거슬러 고려시대 더 거슬러 고조선부터도 이런 말이 나온 것은 결국에는 약자들과 함께 약자의 세상을 바꾸려고 했기때문에 모두 이상과 꿈으로 끝난것이다
그래서 결국에 희망으로만 끝나는, 현실이 되지 못하는...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더 모순된 이야기지만, 강한자가 되어 나보다 덜 강한 사람들을 이기면서 내가 강자가 되면 어느세 나 또한 그러겠지만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겠다는 초심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면,,, 이미 난 강자인데 구지 약자편에 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고 약자의 편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캐치프래이가 영원히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이런들 어떠하리